강빛마을 개촌사
안녕하십니까?
109채의 강빛마을이 지난 20일 총회를 열고 개촌했습니다.
그날 촌장으로 선임받은 고현석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여러분을 모시고 강빛마을의 개촌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갖는 자리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비가 많이 와 불편하기까지 함에도 불구하시고 꼭 강빛마을의 개촌을 직접 축하해 주셔야겠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주신 박준영 도지사님, 김재무 도의회 의장님과 도의원님들, 허남석 군수님을 비롯한 곡성군의 기관장님들, 김종국 군의회 의장님과 군의원님들, 임종두 곡성군사회단체협의회장을 비롯한 단체장님들, 사단법인 전국이통장연합회 곡성군지회 허도환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이장님들, (사)대한기자협회 곡성지회 김광휘 회장님을 비롯한 기자님들, 재광곡성군향우회 류근춘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향우님들, 문영홍 농협중앙회 곡성군지부장님을 비롯한 농협가족 여러분, 멀리 서울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윤주이 한국농어민신문 사장님과 농민신문, 한국농업인신문 기자님. 그리고 공식 초대장을 위의 분들에게만 보냈기 때문에 초대장을 받지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신 고재만 전교님과 김영찬 목사님과 이창호 군의원님을 비롯해서 이웃 구례군에서 오신 분들, 멀리 서울에서 내려오신 고씨중앙종문회 고광용 사무국장님을 비롯한 저의 일가분들, 원근각지에서 찾아와 주신 여러 귀빈들께 강빛마을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곡성군과 곡성군의회가 오늘의 행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준영 지사님은 개촌 직전에 다녀가셨는데도 오늘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강빛마을은 정부의 태평지구전원마을조성사업에 참여하기 위하여 21명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한 2008년 3월 1일부터 따져도 5년여만에 탄생했습니다. 당초 계획보다 2년 반 이상이 늦어졌습니다. 강빛마을은 은퇴세대의 농촌정주로 농촌의 공동화를 막고 어떻게든 농촌지역사회를 유지·발전시키고자 하는 전직 농촌군수의 간절한 소망과 몸부림의 산물입니다.
흔히 농촌에 일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촌의 직장에서 소득만 얻고 살기는 도시에서 사는데, 일자리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이 농촌에 입지하고 싶어도 일할 사람을 도시에서 출퇴근시켜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못 들어옵니다. 그 중심에 자녀교육이라는 핑계가 있다보니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젊은 세대를 농촌에 붙들어 두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은퇴세대입니다. 직장과 자녀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난 은퇴세대가 농촌에 정주한다면 젊은 세대와 달리 안정적인 인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좋은 일이니 농촌에서 살자고 할 수는 없지요. 그들에게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세대를 보니까, 집값이 비싸므로 처분해서 농촌에 오면, 평생 살 집을 마련하고 남는 돈으로 노후를 보낼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퇴해서까지 수도권에 사는 것은 본인들의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특히 전남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조건이 은퇴세대가 살기에 가장 좋습니다. 수도권 은퇴자와 전남 농촌은 상생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농촌정주를 꺼리는 요소들을 해소해 줄 건강, 일과 소득, 취미와 성취활동, 지역사회 및 젊은 세대와의 교류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작동하려면 마을의 규모가 커야하므로 150세대로 강빛마을 모델이라는 구상안을 만들어 사람 모집에 나섰습니다.
이 모델은 분명히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세대에게 살 길을 가르쳐준 것이므로 열광할 모델이고 열광해야할 모델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전남 출신조차도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호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힘들 줄은 짐작했었지만, 그래도 수도권 노인인구가 270만인데 이 중 100세대야 모으지 않겠는가 생각했었는데, 한 세대 한 세대 모으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실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국 초유의 모델이므로, 그 실현 가능성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사이 용역비와 사무비 등 조달에 경제적 어려움도 컸습니다. 토목·건축분야에 문외한이고 보니 행정절차를 밟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당초예정보다 시일이 늦어지면서 비용증가의 압박감도 컸습니다.
어느 때는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뒤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는데도 혹시나 벗어나는 길이 없을지 부질없는 궁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를 격려하고 강빛마을을 이끌고 온 사람이 아내인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장관입니다. 2013년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그 일로 오늘 자리를 함께 못해 유감입니다. 어떻게든 최종 인가받은 계획대로 109호의 주택을 지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담을 주게 되고, 관계에 섭섭함이 생기기도 하다 보니, 무엇보다 정신적 고통이 매우 심했습니다. 우리 부부 전 생애의 명예를 걸고 무리를 감수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뇌와 고통을 딛고 드디어 109명의 회원을 모아 109채의 집을 지어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어려운 고비마다 이상하리만큼 그 시기 그 자리에 귀인이 나타나서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큰 고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그리고 귀인들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 귀인은 사업부지를 후불조건으로 두 말 없이 넘겨준 김성식 곡성군지역개발협의회장과 김정애 당시 곡성군여성단체협의회장 부부입니다. 사업토지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누가 뭐래도 추진위원회에 가입해 주신 회원들입니다. 여러 가지 인연으로 강빛마을에 오셨는데, 공통점은 우리 부부에 대한 신뢰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고, 책임감을 무겁게 느낍니다.
지역계획과 개발행위와 건축허가와 지적정리와 등기, 그리고 자금융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크고 작은 귀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토목과 건축의 용역과 시공, 전기와 통신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큰 공사를 하는 동안 큰 사고 없이 지내왔고, 볼라벤 태풍에도 무사했습니다. 민원도 없었습니다. 도로에 자재가 적치되어 있는데 어찌 민원이 없었겠습니까? 크고 작은 민원을 행정이, 경찰이, 죽곡면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감싸주시고, 오히려 민원인을 설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곡성군과 전라남도의 수많은 공무원들이 저의 취지에 공감해서 자기 일은 열심히 도와주면서도, 실현되기 어렵겠다는 염려 때문에 안타깝게 걱정해 주었습니다. 전라남도 도시계획심의위원이신 교수님 한 분은 지금까지 이런 계획을 가지고 나섰다가 낭패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면서 냉정하게 대했습니다. 그 이면에 저의 실패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서 마침내 오늘의 강빛마을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너무 딱딱하니 에피소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준영 지사님도 귀인 중 한 분이신데 얼른 생각에 자금을 지원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들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정부지원 한도가 30억 원인데 기반시설공사비가 38억을 넘어서자 어려운 살림임에도 전라남도와 곡성군이 반씩 나누어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 있습니다. 전원마을조성사업의 목표가 도시민 유치이고, 저도 그 일 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무조건 집짓고 와서 살 사람을 모집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사님을 만나 담소하는 중에 “처음부터 무리하게 상주를 강요하지 말라. 주소만 두고 별장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면 정들어 상주하게 된다. 특히, 여자들이 반대하는데 남편만 먼저 내려오게 하면, 부인이 왔다갔다 하면서 농촌에 익숙해지면 내려오더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전원마을, 행복마을 추진 과정에서 체득하신 경험이셨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 모으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까지 생각하던 판이었는데, 이 귀띔이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해서 다시 얘기를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면 김성식 회장 부부라거나 보증을 서주어서 10억 원 대출 길을 열어주셨던 금광기업 고경주사장과 같은 초창기의 귀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습니다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일일이 성함을 못 밝혔지만, 이 모든 귀인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빛마을의 역사에 기록되실 것입니다.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도 감사합니다. 모두가 우리 부부의 복이며, 강빛마을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초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자를 겨냥한 보편적 모델로 자신 있게 제시했었는데, 아직은 보편이 못되고 특별한 선각자들의 모델로 출발합니다. 만고풍상 끝에 연령구조로는 60대 이상, 50대, 40대 이하가 각각 대략 1/3씩이며,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비수도권, 곡성권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1/3씩 차지합니다. 어떤 분들은 당초 구상보다 낫다고 합니다. 더 낫고 안 낫고를 떠나 현실모델입니다, 50대는 60대 이상과 달리 은퇴후에 대한 준비의식이 있어서 회원모집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강빛마을은 별장마을이나 요양시설이 아닙니다. 중산층 은퇴세대가 지역사회와 시설과 활동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모델입니다. 강빛마을은 기본구상 때부터 30평 주택을 지어 1층 20평에 살면서 2층 10평을 펜션으로 운영하는 모델입니다. 소득도 얻고 은퇴 후에도 늘 외부와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모은 강빛마을 펜션 ‘밸리홈’이 오는 27일 개장합니다. 호텔식 시설과 운영 및 단체관광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수와 행사장을 갖추어 지역의 일반펜션, 오토캠핑 등 숙박시설과 서로 보완함으로써, 곡성군과 인근의 관광활성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미 예약접수를 시작했는데 숙소에서 취사가 안된다고 해서 취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주변의 펜션을 소개해 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일반 펜션에 예약하시려는 분이 침대 등 까다로운 주문을 하시면 강빛마을로 연계해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상승효과가 날 것입니다.
밸리홈의 성공은 강빛마을과 같은 모델의 확산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향우들이 첫 발동을 세차게 걸어주시도록 편지를 냈습니다. 단체장님과 이장님, 그리고 재광 향우님들이 나서서 수도권 등 타지에 사는 향우·친지들에게 순천만 정원박람회도 볼 겸 강빛마을 밸리홈을 많이 이용하도록 널리 알려 주십시오.
여러 귀인들 덕택을 입어 강빛마을이 현재의 모습으로 출발합니다. 다른 전원마을 조성사업이라면, 109채의 집을 지어 각자 등기까지 마친 것만으로도 책임을 다 한 셈입니다. 한국 초유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강빛마을은 이제 출발입니다. 그 간의 온갖 고생은 이 출발점을 마련하기 위한 진통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강빛마을이 활발한 생활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기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사례를 갖게 된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수도권의 은퇴세대가 따뜻한 남녘의 농촌으로 마음 놓고 살러오게 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강빛마을의 책임이 끝납니다. 그것이 강빛마을의 소명입니다. 3년 쯤 걸릴 것 같습니다. 현재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은퇴세대의 일거리가 많이 생기고 있고, 은퇴세대의 일거리가 큰 벌이는 안 될지라도 소득으로 연결될 전망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제 거의 수그러들었습니다만, 지금도 저더러 군수 한 번 더하라는 권유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진심일 수도 있고 떠보는 말씀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고마운 일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정치계를 떠났고 더 이상 선거에 나서지 않습니다. 작년의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섰던 것은 우리 고장에 은퇴자도시를 유치할 욕심과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구례실내체육관에 그야말로 구름같이 모였던 곡성군민들의 성원과 열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데 멀쩡한 농촌선거구를 해체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큽니다만, 한 걸음에 건너뛸 생각을 접고 강빛마을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축적해 오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강빛마을에 전념해 왔습니다. 선거구 해체 후에 마을마다 들려서 그 간의 성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줄 알면서도 자칫 엉뚱한 오해의 소지가 보여서 결례를 무릅쓰기로 했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나마 양해를 구하며, 가슴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강빛마을이 그 소명을 다 할 때까지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모두 접고 강빛마을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러한 저의 각오를 말씀드리면서, 사랑하는 곡성군민과 향우 여러분께 한 가지 간곡한 부탁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꽤 긴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사실 강빛마을을 왜 만들었고, 무엇을 하려하고, 어떻게 하려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과거 섬진강 기차마을이 그랬습니다. 또 막연하지만 무엇인가 지역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어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이해가 잘 안되시라도, 기대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3년은 참고 가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비난과 비판, 불평과 불만은 참아 주시고, 기대를 가지고 참고 기다려 보자, 믿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자리를 함께하여 강빛마을의 개촌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신 박준영 도지사님, 김재무 도의회 의장님, 허남석 군수님, 김종국 군의회 의장님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들께 강빛마을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강빛마을이 그 소명을 다함으로써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할 것임을 다짐하고, 강빛마을의 이름으로 한분 한분의 건강과 행운을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4월 23일
강빛마을 촌장 고현석
# 경축식 당일 개촌사를 낭독하면서 시간관계로 생략한 대목이 있습니다.
강빛마을 개촌사
안녕하십니까?
109채의 강빛마을이 지난 20일 총회를 열고 개촌했습니다.
그날 촌장으로 선임받은 고현석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여러분을 모시고 강빛마을의 개촌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갖는 자리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비가 많이 와 불편하기까지 함에도 불구하시고 꼭 강빛마을의 개촌을 직접 축하해 주셔야겠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주신 박준영 도지사님, 김재무 도의회 의장님과 도의원님들, 허남석 군수님을 비롯한 곡성군의 기관장님들, 김종국 군의회 의장님과 군의원님들, 임종두 곡성군사회단체협의회장을 비롯한 단체장님들, 사단법인 전국이통장연합회 곡성군지회 허도환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이장님들, (사)대한기자협회 곡성지회 김광휘 회장님을 비롯한 기자님들, 재광곡성군향우회 류근춘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향우님들, 문영홍 농협중앙회 곡성군지부장님을 비롯한 농협가족 여러분, 멀리 서울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윤주이 한국농어민신문 사장님과 농민신문, 한국농업인신문 기자님. 그리고 공식 초대장을 위의 분들에게만 보냈기 때문에 초대장을 받지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신 고재만 전교님과 김영찬 목사님과 이창호 군의원님을 비롯해서 이웃 구례군에서 오신 분들, 멀리 서울에서 내려오신 고씨중앙종문회 고광용 사무국장님을 비롯한 저의 일가분들, 원근각지에서 찾아와 주신 여러 귀빈들께 강빛마을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곡성군과 곡성군의회가 오늘의 행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준영 지사님은 개촌 직전에 다녀가셨는데도 오늘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강빛마을은 정부의 태평지구전원마을조성사업에 참여하기 위하여 21명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한 2008년 3월 1일부터 따져도 5년여만에 탄생했습니다. 당초 계획보다 2년 반 이상이 늦어졌습니다. 강빛마을은 은퇴세대의 농촌정주로 농촌의 공동화를 막고 어떻게든 농촌지역사회를 유지·발전시키고자 하는 전직 농촌군수의 간절한 소망과 몸부림의 산물입니다.
흔히 농촌에 일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촌의 직장에서 소득만 얻고 살기는 도시에서 사는데, 일자리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이 농촌에 입지하고 싶어도 일할 사람을 도시에서 출퇴근시켜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못 들어옵니다. 그 중심에 자녀교육이라는 핑계가 있다보니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젊은 세대를 농촌에 붙들어 두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은퇴세대입니다. 직장과 자녀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난 은퇴세대가 농촌에 정주한다면 젊은 세대와 달리 안정적인 인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좋은 일이니 농촌에서 살자고 할 수는 없지요. 그들에게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세대를 보니까, 집값이 비싸므로 처분해서 농촌에 오면, 평생 살 집을 마련하고 남는 돈으로 노후를 보낼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퇴해서까지 수도권에 사는 것은 본인들의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특히 전남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조건이 은퇴세대가 살기에 가장 좋습니다. 수도권 은퇴자와 전남 농촌은 상생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농촌정주를 꺼리는 요소들을 해소해 줄 건강, 일과 소득, 취미와 성취활동, 지역사회 및 젊은 세대와의 교류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작동하려면 마을의 규모가 커야하므로 150세대로 강빛마을 모델이라는 구상안을 만들어 사람 모집에 나섰습니다.
이 모델은 분명히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세대에게 살 길을 가르쳐준 것이므로 열광할 모델이고 열광해야할 모델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전남 출신조차도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호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힘들 줄은 짐작했었지만, 그래도 수도권 노인인구가 270만인데 이 중 100세대야 모으지 않겠는가 생각했었는데, 한 세대 한 세대 모으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실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국 초유의 모델이므로, 그 실현 가능성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사이 용역비와 사무비 등 조달에 경제적 어려움도 컸습니다. 토목·건축분야에 문외한이고 보니 행정절차를 밟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당초예정보다 시일이 늦어지면서 비용증가의 압박감도 컸습니다.
어느 때는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뒤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는데도 혹시나 벗어나는 길이 없을지 부질없는 궁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를 격려하고 강빛마을을 이끌고 온 사람이 아내인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장관입니다. 2013년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그 일로 오늘 자리를 함께 못해 유감입니다. 어떻게든 최종 인가받은 계획대로 109호의 주택을 지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담을 주게 되고, 관계에 섭섭함이 생기기도 하다 보니, 무엇보다 정신적 고통이 매우 심했습니다. 우리 부부 전 생애의 명예를 걸고 무리를 감수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뇌와 고통을 딛고 드디어 109명의 회원을 모아 109채의 집을 지어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어려운 고비마다 이상하리만큼 그 시기 그 자리에 귀인이 나타나서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큰 고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그리고 귀인들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 귀인은 사업부지를 후불조건으로 두 말 없이 넘겨준 김성식 곡성군지역개발협의회장과 김정애 당시 곡성군여성단체협의회장 부부입니다. 사업토지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누가 뭐래도 추진위원회에 가입해 주신 회원들입니다. 여러 가지 인연으로 강빛마을에 오셨는데, 공통점은 우리 부부에 대한 신뢰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고, 책임감을 무겁게 느낍니다.
지역계획과 개발행위와 건축허가와 지적정리와 등기, 그리고 자금융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크고 작은 귀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토목과 건축의 용역과 시공, 전기와 통신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큰 공사를 하는 동안 큰 사고 없이 지내왔고, 볼라벤 태풍에도 무사했습니다. 민원도 없었습니다. 도로에 자재가 적치되어 있는데 어찌 민원이 없었겠습니까? 크고 작은 민원을 행정이, 경찰이, 죽곡면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감싸주시고, 오히려 민원인을 설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곡성군과 전라남도의 수많은 공무원들이 저의 취지에 공감해서 자기 일은 열심히 도와주면서도, 실현되기 어렵겠다는 염려 때문에 안타깝게 걱정해 주었습니다. 전라남도 도시계획심의위원이신 교수님 한 분은 지금까지 이런 계획을 가지고 나섰다가 낭패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면서 냉정하게 대했습니다. 그 이면에 저의 실패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서 마침내 오늘의 강빛마을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너무 딱딱하니 에피소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준영 지사님도 귀인 중 한 분이신데 얼른 생각에 자금을 지원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들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정부지원 한도가 30억 원인데 기반시설공사비가 38억을 넘어서자 어려운 살림임에도 전라남도와 곡성군이 반씩 나누어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 있습니다. 전원마을조성사업의 목표가 도시민 유치이고, 저도 그 일 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무조건 집짓고 와서 살 사람을 모집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사님을 만나 담소하는 중에 “처음부터 무리하게 상주를 강요하지 말라. 주소만 두고 별장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면 정들어 상주하게 된다. 특히, 여자들이 반대하는데 남편만 먼저 내려오게 하면, 부인이 왔다갔다 하면서 농촌에 익숙해지면 내려오더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전원마을, 행복마을 추진 과정에서 체득하신 경험이셨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 모으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까지 생각하던 판이었는데, 이 귀띔이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해서 다시 얘기를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면 김성식 회장 부부라거나 보증을 서주어서 10억 원 대출 길을 열어주셨던 금광기업 고경주사장과 같은 초창기의 귀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습니다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일일이 성함을 못 밝혔지만, 이 모든 귀인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빛마을의 역사에 기록되실 것입니다.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도 감사합니다. 모두가 우리 부부의 복이며, 강빛마을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초 수도권의 중산층 은퇴자를 겨냥한 보편적 모델로 자신 있게 제시했었는데, 아직은 보편이 못되고 특별한 선각자들의 모델로 출발합니다. 만고풍상 끝에 연령구조로는 60대 이상, 50대, 40대 이하가 각각 대략 1/3씩이며,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비수도권, 곡성권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1/3씩 차지합니다. 어떤 분들은 당초 구상보다 낫다고 합니다. 더 낫고 안 낫고를 떠나 현실모델입니다, 50대는 60대 이상과 달리 은퇴후에 대한 준비의식이 있어서 회원모집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강빛마을은 별장마을이나 요양시설이 아닙니다. 중산층 은퇴세대가 지역사회와 시설과 활동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모델입니다. 강빛마을은 기본구상 때부터 30평 주택을 지어 1층 20평에 살면서 2층 10평을 펜션으로 운영하는 모델입니다. 소득도 얻고 은퇴 후에도 늘 외부와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모은 강빛마을 펜션 ‘밸리홈’이 오는 27일 개장합니다. 호텔식 시설과 운영 및 단체관광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수와 행사장을 갖추어 지역의 일반펜션, 오토캠핑 등 숙박시설과 서로 보완함으로써, 곡성군과 인근의 관광활성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미 예약접수를 시작했는데 숙소에서 취사가 안된다고 해서 취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주변의 펜션을 소개해 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일반 펜션에 예약하시려는 분이 침대 등 까다로운 주문을 하시면 강빛마을로 연계해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상승효과가 날 것입니다.
밸리홈의 성공은 강빛마을과 같은 모델의 확산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향우들이 첫 발동을 세차게 걸어주시도록 편지를 냈습니다. 단체장님과 이장님, 그리고 재광 향우님들이 나서서 수도권 등 타지에 사는 향우·친지들에게 순천만 정원박람회도 볼 겸 강빛마을 밸리홈을 많이 이용하도록 널리 알려 주십시오.
여러 귀인들 덕택을 입어 강빛마을이 현재의 모습으로 출발합니다. 다른 전원마을 조성사업이라면, 109채의 집을 지어 각자 등기까지 마친 것만으로도 책임을 다 한 셈입니다. 한국 초유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강빛마을은 이제 출발입니다. 그 간의 온갖 고생은 이 출발점을 마련하기 위한 진통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강빛마을이 활발한 생활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기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사례를 갖게 된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수도권의 은퇴세대가 따뜻한 남녘의 농촌으로 마음 놓고 살러오게 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강빛마을의 책임이 끝납니다. 그것이 강빛마을의 소명입니다. 3년 쯤 걸릴 것 같습니다. 현재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은퇴세대의 일거리가 많이 생기고 있고, 은퇴세대의 일거리가 큰 벌이는 안 될지라도 소득으로 연결될 전망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제 거의 수그러들었습니다만, 지금도 저더러 군수 한 번 더하라는 권유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진심일 수도 있고 떠보는 말씀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고마운 일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정치계를 떠났고 더 이상 선거에 나서지 않습니다. 작년의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섰던 것은 우리 고장에 은퇴자도시를 유치할 욕심과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구례실내체육관에 그야말로 구름같이 모였던 곡성군민들의 성원과 열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데 멀쩡한 농촌선거구를 해체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큽니다만, 한 걸음에 건너뛸 생각을 접고 강빛마을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축적해 오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강빛마을에 전념해 왔습니다. 선거구 해체 후에 마을마다 들려서 그 간의 성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줄 알면서도 자칫 엉뚱한 오해의 소지가 보여서 결례를 무릅쓰기로 했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나마 양해를 구하며, 가슴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강빛마을이 그 소명을 다 할 때까지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모두 접고 강빛마을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러한 저의 각오를 말씀드리면서, 사랑하는 곡성군민과 향우 여러분께 한 가지 간곡한 부탁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꽤 긴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사실 강빛마을을 왜 만들었고, 무엇을 하려하고, 어떻게 하려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과거 섬진강 기차마을이 그랬습니다. 또 막연하지만 무엇인가 지역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어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이해가 잘 안되시라도, 기대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3년은 참고 가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비난과 비판, 불평과 불만은 참아 주시고, 기대를 가지고 참고 기다려 보자, 믿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자리를 함께하여 강빛마을의 개촌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신 박준영 도지사님, 김재무 도의회 의장님, 허남석 군수님, 김종국 군의회 의장님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들께 강빛마을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강빛마을이 그 소명을 다함으로써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할 것임을 다짐하고, 강빛마을의 이름으로 한분 한분의 건강과 행운을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4월 23일
강빛마을 촌장 고현석
# 경축식 당일 개촌사를 낭독하면서 시간관계로 생략한 대목이 있습니다.